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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Gigi Sung

Published

May 30, 2025





11월 2일, 2025년 in Seoul

한국에 남을지 미국으로 갈지 계속 고민이 된다. 왜? 아마도 어떤 쪽을 선택하든 고난이 예상되기 때문인데.

잔잔하지만 항구적인 기쁨, 안정감, 호기심을 자극하는 건 내게 관계뿐인가? 일을 사랑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일과 관계는 독립적이지 않다. 같은 자원을 두고 경쟁하는 관계는 아니다. 아니다. 경쟁하는 관계다. 일차적으로는. 하지만 결국에는 서로의 필요충분조건이다. 필요충분 조건.

필요충분 조건(necessary and sufficient condition)은 어떤 명제가 참이 되기 위한 “정확한 조건”을 말한다.

“일과 관계가 필요충분조건이다”라는 말은, 일(=직업, 업무)관계(=인간관계, 사회적 연결)가 서로 있어야만 하고, 또 그 자체로 충분하다는 뜻. 즉, 둘 중 하나만으로는 불완전하고, 두 가지가 함께 있을 때만 그 사람이 삶의 어떤 목적이나 만족, 혹은 정체성을 완성한다는 의미로 쓸 수 있다.

정확히 “일과 사랑이 서로의 필요충분조건이다” 라는 주장의 뜻을 gpt에게 해석 맡겨 보았다:

좋아, 그럼 문장을 “일과 연인관계가 서로의 필요충분조건이다”로 해석해보자. 이건 굉장히 강한 — 거의 철학적 혹은 존재론적인 — 진술이야. 단순히 “둘 다 중요하다” 수준이 아니라, 일과 사랑이 서로를 성립시키는 조건, 즉 어느 하나라도 없으면 다른 하나도 완전하게 존재할 수 없다는 의미다.

논리적으로 풀면 이렇게 된다:

  1. 일이 있을 때만 연인관계가 성립한다 (일 → 관계) 일이 단순히 생계 수단이 아니라, 자아의식·존재감·사회적 위치를 형성하는 근거이기 때문에 그 기반이 있어야 진정한 관계가 유지된다. 즉, “일이 있어야 관계가 가능하다.” 경제적 독립이든, 자기 실현이든, 사랑이 기생하지 않기 위한 조건이라는 뜻이다.

  2. 연인관계가 있을 때만 일이 성립한다 (관계 → 일) 반대로, 사랑이 없으면 일의 의미가 공허해지고, 인간적인 유대나 정서적 안정이 없으면 일은 단순한 생존 행위로 전락한다. 즉, “관계가 있어야 일이 지속될 수 있다.”

이 두 방향이 동시에 성립한다면,

일과 사랑은 서로를 완성시키고 정의하는 관계 — 둘 중 하나라도 결여되면 다른 하나도 온전하지 않은 상태 — 그래서 서로의 필요충분조건이다.

요컨대 이 표현은 “사랑 없는 일은 공허하고, 일 없는 사랑은 불안정하다”는 뜻을 논리적 형식으로 압축한 말이야. 서로가 서로를 조건짓는, 동시성의 관계라는 거지.

Bear that in mind. 그럼 둘 중 무엇부터 단단하게 뿌리내릴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무의미하다. 항상 내 고민이었던것. 그냥 닥치는 대로 닥치는 대로 살면 되었던 것인것을. 그러다 보면 둘사이에 리듬이 자연히 생겨날텐데. 다시는 실수하거나 낭비하고 싶지 않은 나의 작은 그릇이 너무 많은 가지를 품고 있는 사랑과 일의 잠재태를 담지 못한것이다. 내 그릇이 딱.

한편, 미국으로 떠날 것에 마음이 기울어짐에 따라 하루하루가 아쉽다. 특히 시원과 현아와 보내는 시간은 매 분이 소중하고 아쉽다.

시원과 현아

캉캉캉 캉캉캉 캉캉캉
자암만추
또띠 또띠 또띠
고속터미널에서 사온 허리춤 크리스마스트리
시원이가 누워 노랗게 바란 이부자리
셀프 파마로 뽀족해진 현아의 머리카락
후라이드 반, 양념 반, 샌드위치, 망고 스무디
두홍이, 다빈이, 가영이, 지지
지지 지지
포근한 22도, 포근한 동숲,
민머리와 덥수룩이의
삼성캐슬 202호
다가올 나의 영원한 노스탤지어.









6월 11일, 2025년 in Seoul
- daily dose of meditation through writing. - “지독한 반복의 피로” >> 시지포스가 기껏 돌을 올려놓으면 다시 굴러떨어지는 것 처럼. 30살 이후의 대부분의 경험은 사실 반복일텐데. 사람들은 그 지루함을 이겨내고 어떻게 사는 것임. 아님 이겨내긴 한 것임? I doubt it. 그러나 “동일한 것의 반복”이라는 허무: 이건 인간이 동일성과 예측 가능한 패턴을 중심으로 세계를 파악하려는 본능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반응.

- Chat with Dr. Kang. - GenAI RAG + Early Warning System >> good idea. should try to build a prototype. no need to build a full-fledged product. pitch it to the right people. iterate, pivot, repeat. - AI for good: may be a small market, compared to the private sector, but surely there is a market. you can become a sole and solid player. plus, you have a good network in the UN. you can leverage it to your advantage. - DO NO QUIT YOUR JOB. time will come when you can quit your job and focus on your startup. but now is not the time. you need to build a solid foundation first. - 결론은 일단 한국..?

- 서촌, 삭스타즈, 아무튼 양말, 구달. - 서울은 정말 있을 곳이 못된다. 미어터진다. 휴일에는 홈프로텍터로 남는 편이 아무래도 낫다.
- 한편 오늘 내향인의 플러팅에 관한 재밌는 글을 봤다. 요지는 말을 건다, 주위를 서성인다, 안경을 벗는다 등등의 굉장히 subtle한 신호들이 관심과 애정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당연하지. 본디 호감의 표시는 최대한 묽게 할 수록 설레는 것이 아닌가? 상대가 나에게 관심이 있으면 알아채겠지하는 일종의 변태같은 마음으로 꼬깃꼬깃 접어서 다른 것들과 혼란한 틈에 넣어서 밀어넣는 것. 관심과 애정은 빛이 가득한 방인데 호감은 이제 당신이 보기에 그 문틈 사이로 살짝 새어나오는 빛 같은 것이고. 당신이 새어나오는 걸 봐줬으면 좋겠는데 또 그걸 봤다는 티를 내면 너무 부끄러우니까 마지막에 가서는 에라 될대로 되어라하는 자포자기의 마음. 나의 지난 숱한 데이팅이 관계로 발전하지 못하고 지지부진 끝나버린 이유다. 이번에는 좀 달라야할텐데.
- 하지만 나의 연애 고자성과는 별개로, 당신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좀 더 많은 실마리들이 있다면 마음이 편할 것 같다. 지금까지의 관계는 상대가 모두 불도저였는데 혹시 그래서 내가 spoiled인가..!?! 지원은 내가 너무 조급하다고 나무란다. 더 천천히 가라고 한다. 마치 요리할 때, 약불 아니면 강불만 쓰는 나의 어리석음처럼 관계도 바이너리하게 접근하려는 결국 내 문제인 것인데…?! 나는 제대로된 조언을 받고 있는거겠지? 여기서 더 신중해져야한다는거라니. 이래서 몇 년간 자발적 솔로로 남는 사람들이 많나보다.

- 한편 지원의 인스타 피드에서 발견한 주옥같은 아티스트: Xinwenyue Shi (施鑫文月) - 중국 쓰촨성 청두 출신의 싱어송라이터이자 프로듀서 - 전통적인 바슈(巴蜀) 문화와 현대 힙합/R&B를 결합한 독특한 음악 스타일
- Rainmaking - insanly good…!! Someone please let everyone know about this artist and this song.
- 素芬儿,别走
이 기회에 중국어 다시 해야한다. 그렇게 투자한 시간과 노력이 아깝지 않은지?.. 중국 친구들에게 할 줄 아는 말이란 꺼져, 닥쳐 정도밖에. 천박하구나 지지. <!–





6월 5일, 2025년 in Seoul





6월 5일, 2025년 in Seoul
- 후 불면증이 다시 심해질 것 같은 불안한 예감이 든다. 이제 멜라토닌도 효과가 없다. 짜증이 최고조다. 기껏해봐야 두 세시간 자고 다시 두 세시간을 뒤척인다. 해야할건 많은데 2025년 상반기가 끝나가도록 제대로 끝낸 것이 없다는 생각이 부담이 되어서 짓누르는 것 같다. 유월 말 정도에는 방콕을 가야겠다. 민지 언니가 몸만 오라고 했다. 건강도 챙기고, 성찰의 시간도 좀 갖고 해야겠다. early warning system ai application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도 세워야한다. 방콕, 디씨, 카이로, 홍콩.
- Event-based survaillance EIOS - Early warning system list up 하기. - Pitching events/accerlerators list up 하기. - Engineering course catch up 하기. - Check in with Arafat…! - 하루 at least 30분 독서하기. - 러닝 및 명상 - 11일 오전 수현 zoom. Hmm, what to expect?





5월 31일, 2025년 in Seoul









5월 30일, 2025년 in Seoul
- 민지언니는 내가 너무 과하단다. 머리, 안경, 양말, 구두를 포기하라고 한다. 그러면 더 많은? 상대에게 이성적 어필 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첫째, 나는 더 많은 사람에게 어필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어차피 내 감성을 편하게 표현하지 못할 사람이라면 데이트는 커녕 친구로도 남고 싶지 않을 것이다. 둘째, 머리, 안경, 양말, 구두가 스크리닝 장치가 될 수 있다면 완전 이득 아닌가. 나는 어차피 hetronormative한 performance를 꾸준히 하기에는 너무 멀리와버렸다. 나와 비슷하게 멀리 와버린 사람만 들어오라고하면…? 그럼 또 우리는 echo chamber에 갇히게 되는 것인가? echo chamber에 갇히는 건 잘못된건가? 경도된 건가? 아님 가치를 지키는 건가? 뭐지?





5월 25일, 2025년 in Seoul

” - 다학제적·융합적 사고의 구현자 바우하우스는 건축·공예·회화·그래픽·산업디자인 등 전통적으로 분리된 여러 예술과 기술 분야를 ’총체적 디자인(Gesamtkunstwerk)’이라는 개념 아래 통합하려 한 학교였습니다. 누군가를 “인간 바우하우스”라고 부른다는 것은, 마치 살아 있는 바우하우스처럼 한 사람이 여러 영역을 넘나들며 창의적으로 사고·작업한다는 찬사인 셈입니다.

- 형태와 기능의 결합, 그리고 실용성 중시 바우하우스는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는 원칙을 내세워, 장식성보다 실용적 효용과 기계 생산 방식을 강조했습니다. 따라서 “인간 바우하우스”는 단순히 예술적 재능이 뛰어날 뿐 아니라, 그 결과물이 실제로 유용하고 체계적인 가치가 있음을 뜻하기도 합니다.

을 의미하는 비유적 칭찬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누군가가 당신을 “인간 바우하우스”라고 말한 것은 곧 당신이 다재다능한 크리에이터이자 실용적 혁신가로서 타고난 능력을 지녔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5월 16일, 2025년 in Seoul





5월 8일, 2025년 in Cairo




5월 5일, 2025년 in Cairo
- AI Capacity Building Workshop Day 1을 드디어 마쳤다. 역시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의견을 듣고 내가 아는 것을 공유하는 일은 보람되고 보람되고 보람되다.
- 이제 드디어 일주일 뒤면 카이로를 떠난다. 시간이 영겁같이 끝나지 않을 것 같더니 끝은 이렇게 또 갑작스럽게 온다. 하루하루가 소중해져서 동네 산책을 매일 나간다.





4월 29일, 2025년 in Shanghai





4월 23일, 2025년 in Seoul
- 꽤 오랜시간 끊임없이 투자를 했다고 생각하는데 아직도 세상은 넓고 배워야할 것은 많다.
- 전문성을 갖는다는건 장벽을 쌓는것이 아니라, 어떤 조류에든 뜰수 있는 배를 만드는 것?
- 사람을 만나기 위해선 한국, 적어도 아시아에 locate 해야겠나?





4월 21일, 2025년 in Seoul

“하나님 말씀과 부처님 말씀, 그리고 한국”

오랜만에 다시 찾은 한국은 역시나 복잡하다. 어딜가든지 사람들이 꽉꽉 들어차있고 그 사이를 양해를 구하며 비집고 다니기에는 내가 너무 shy하다.

한국에만 오면 드는 양가적인 감정이란:

  1. 이곳의 가족, 친구들, 그리고 나에게 위안을 주는 장소들.

  2. 목적 의식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너무 바쁘게 돌아가는 사회.

1번에서 얻는 위로는 딱 며칠을 간다. 2번에서 느끼는 압박감은 그보다 훨씬 더 길게 간다.

그래서인지 이집트에서도 없었던 불면증이 다시 도졌다. 내가 악몽을 꾸면서 헛소리도 해댄댄다.

교보문고에 ‣숫타니파타 마음공부 라는 책이 있더라. 대충 쓱 보니 “포기하라” “집착하지마라” “욕망의 크기를 줄여라”라는 말 뿐이다. 퍼뜩 든 생각은 ’그럴바엔 불안하고 말겠다’는 거다. 나는 나의 욕망을 온전히 긍정하면서도 마음의 평안을 얻고 싶은거지 욕망을 포기하고 싶은게 아니다. 부처님 말씀이 도저히 심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반면에 하나님 말씀은 상당히 위로가 된다. 하나님은 욕망을 줄이라고 하지 않는다. “구하면 주실것”이라고 한다. 내가 불안한 이유는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란다. 확실히 기독교 윤리는 자본주의 정신과 상통하는 면이 있는게다.